100년 전통의 진주 순(純) 실크, 세계를 물들이다①

박태현 사장 "현장을 알아야 최상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조인수 | 기사입력 2020/05/07 [00:50]

100년 전통의 진주 순(純) 실크, 세계를 물들이다①

박태현 사장 "현장을 알아야 최상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조인수 | 입력 : 2020/05/07 [00:50]

[보스타임 조인수 기자] 우리나라에 산재해 있는 전통산업들을 찾아 살펴보는 것은 세계화 시장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열쇠이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발달로 우리 산업의 풀뿌리라고 할 수 있는 전통산업은 서서히 역사 속에서 사라져가는 추세다.

 

보스타임은 일제강점기에 시작해서 1960~1980년대 산업 발전의 격동기를 거친 다양한 산업 현장을 찾았다. 그중 100년의 실크 산업을 이어온 기업 '순() 실크' 인터뷰를 연재한다.

 

100년의 전통 진주 실크를 세계의 실크로

 

(1)() 실크 박태현 사장을 만나다

  © 조인수

우리나라 실크산업의 흥망성쇠를 함께해온 진주지역 실크산업은 벌써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세계 5대 실크 명산지(이탈리아의 꼬모, 프랑스의 리옹, 일본의 교토, 중국의 항주와 소주, 그리고 진주) 중의 한 곳인 진주는 1920년 우리나라 최초의 방직공장인 동양염직소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됐다.

 

진주는 서부경남의 양잠농업 발달로 인한 원활한 원자재 공급의 용이성와 진주를 가로질러 흐르는 남강의 맑은 물로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 내는 염색이 발달되어 실크산업의 최적지였다.

 

1950~1970년대 실크산업의 중흥기를 거쳐 1980년대를 지나면서 중국의 저가 실크가 국내에 상륙했다.  진주의 실크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진주는 전국 실크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있었고, 실크산업을 책임지던 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진주 실크산업은 100년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 일환으로 국내의 한복 산업에만 바라보지 않고 세계화라는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 판로를 개척했다. 먼저 브라질, 베트남, 우즈벡 등으로 실크 원사 구입에 총력을 기울였다.

 

진주 실크산업의 선두를 달리는 2세대 경영인 순()실크 박태현 사장을 만났다.

 

 

Q. 사장님의 전공이 의상학과, 디자인학과나 섬유공학과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로 실크산업의 경영인이 되셨나?

A.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실크사업을 하셨다. 대학원에서 회계학과를 전공하던 중, 아버지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시면서 더 이상 직접 경영하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바로 실크사업에 뛰어들었다.

 

Q. 아버지를 대신해 경영을 맡으시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A. 실크공장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아야 했다. 누에고치로부터 실을 켜내는 과정, 각각의 실크원사의 특성, 그 원사를 해사, 연사, 합연사로 만드는 과정을 알아야 했다. 그래야 제직할 때의 원단면을 살필 수 있고, 제직기의 특성을 파악해 현장의 요구를 받아줄 수가 있었다. 염색의 전 과정들도 알아야했다. 당시는아무것도 모르는 사장님이었다.

 

아버지는 현장을 알아야 최상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하루에 두 세 번은 현장 확인을 한다. 직기의 상태, 직물의 상태, 원사의 상태, 또 염색되어 온 제품을 꼭 확인한다.

 

만들어진 제품을 영업해서 파는 것도 쉽지 않다. 전국의 도매상을 다 찾아다니며 제품을 영업하는 일을 무한 반복했다.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는 말을 듣고는 은근히 부도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매상들에서 대금지급을 하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 신경을 써야했다.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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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상수 2020/05/09 [16:23] 수정 | 삭제
  • 멋지십니다 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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